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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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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황후 오씨(武烈皇后 吳氏, ? ~ 207년)는 손견의 부인으로, 손견이 동오에서 황제로 추존되면서 황후로 추존됐다. 오군 오현 사람이다. 손책손권의 어머니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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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전당현으로 이주했고, 부모를 잃어 아우 오경(吳景)과 함께 살았다. 손견은 젊은 시절 고향인 오군에서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무열황후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손견이 혼담을 넣자 무열황후의 친척들이 손견의 사람됨이 경박하고 사납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손견이 몹시 불쾌해 오씨 가문에 깊은 원한을 품었다. 그러자 무열황후는 자신을 아껴 집안에 화를 불러들일 수 없다며 스스로 손견에게 시집가겠다고 선언한 후 오씨 집안에 허락을 받아 손견과 결혼했다.[1]

장남 손책이 죽고 아직 어린 차남 손권이 그 세력을 잇자, 군정·민정 양면에서 잘 보좌했다.[2] 손책이 자신의 공조 위등(魏騰)을 죽이려 하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때 홀로 손책에게 말해 위등을 풀어주게 한 일이 있었는데, 무열황후의 지략과 권모술수는 이와 같았다.[3]

건안 12년(207년)에 사망했고, 손견과 함께 고릉(高陵)에 합장됐다.[4] 황룡 원년(229년), 손권이 황제를 일컬으면서 남편과 함께 추증을 받았다.[5] 《삼국지》에는 건안 7년(202년)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희(虞喜)는 《지림》(志林)에서 회계군의 공거부(貢舉簿)에 태수가 상을 당하여 건안 12년·13년(208년)에 공거를 배출하지 않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또 건안 8년·9년 모두 공거를 배출한 것이 확인됨에 따라, 오씨가 건안 12년에 죽었음을 고증하였다.

삼국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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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손책이 우길을 처형하려고 하였을 때 무열황후는 처형을 반대하였다.

무열황후의 가공의 동생 오국태가 손견의 둘째 부인으로 나오는데, 무열황후가 죽자 동생 오국태가 무열황후를 대신해서 국모가 된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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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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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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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수: 《삼국지》 권50 오서5 비빈전제5, 孫破虜吳夫人,吳主權母也。本吳人,徙錢唐,早失父母,與弟景居。孫堅聞其才貌,欲娶之。吳氏親戚嫌堅輕狡,將拒焉,堅甚以慙恨。夫人謂親戚曰:「何愛一女以取禍乎?如有不遇,命也。」於是遂許爲婚,生四男一女。
  2. 위와 같음, 及權少年統業,夫人助治軍國,甚有補益。
  3. 우예: 《회계전록》, 삼국지의 배송지 주석에서 재인용, 策功曹魏騰,以迕意見譴,將殺之,士大夫憂恐,計無所出。夫人乃倚大井而謂策曰:「汝新造江南,其事未集,方當優賢禮士,捨過錄功。魏功曹在公盡規,汝今日殺之,則明日人皆叛汝。吾不忍見禍之及,當先投此井中耳。」策大驚,遽釋騰。夫人智略權譎,類皆如此。
  4. 진수, 전게서, 建安七年,臨薨,引見張昭等,屬以後事,合葬高陵。
  5. 진수, 전게서, 권47 오서2 오주전제2, 追尊父破虜將軍堅為武烈皇帝,母吳氏為武烈皇后,兄討逆將軍策為長沙桓王。